[펌:해맑은아찌] 일본 피겨, 점프만 있고 작품이 없다. :: 2010년 01월 03일 01시 58분
어제 열린 일본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예상대로 아사다 마오 선수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받은 점수는 우리 눈에는 영 차지 않는 예술적 연기임에도 204.62라는 후한 점수를 받았지요. 2위는 섭식 장애를 딛고 부활한 스즈키 아키코로 역시 올림픽 출전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랑프리 파이널 2위로 이미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던 언도 미키는 4위, 뜻밖에 마지막 그룹 첫 선수로 나와 195.73이라는 높은 점수로 깜짝 놀라게 했던 나카노 유카리 선수는 3위했으나 올림픽은 탈락하고 대신 3월 세계 선수권 출전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도 그랬지만 일본 국내 대회의 채점과 일본 여자 선수들의 피겨 스타일을 보면 영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니 저는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피겨 선호 스타일이 삐뚤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최초의 일본 월드 메달리스트 와다나베 에미(1979 동메달)
1959년 생인 에미 와다나베는 일본 여자 최초의 월드 동메달을 1979년에 오스트리아 대회에서 땁니다. 1972/73 시즌부터 8년 연속 일본 선수권을 차지(이토 미도리와 동률 연패 기록)하며 8년간 꾸준히 월드에 출전했고 1980 올림픽 6위, 1979년 창설된 첫 NHK배에서 우승하여 일본의 자존심을 세웠던 그녀는 어머니는 필리핀계 였으며 미국 유학파였습니다. 그녀의 1979 동메달 프리 프로그램 연기를 보십시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해는 와다나베 선수가 토론토 크리켓 클럽에서 훈련했다고 합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미국의 린다 프래티애니 선수와 비교해 보실까요?
이 대회에서 2위였던 동독의 아넷 포츠쉬(1980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타 뮬러의 제자이며 카타리나 비트의 올케)의 올림픽 프리 프로그램도 비교해 보십시오.(1979 월드 영상은 없네요)
예나 지금이나 북미 피겨가 강조하는 것은 '우아함'과 '교감'입니다. 저 시절의 프로그램들은 스핀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지만 90년대 이후 유연성과 균형미 등에서 북미 피겨는 스핀과 스파이럴에서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보이곤 했습니다.
동독과 러시아로 대변될 동유럽 피겨는 보다 많은 운동량과 스피드, 그리고 athletic move를 보여줍니다. 또한 저 구채점제 시절에는 동유럽세가 컴펄서리 종목에 강해서 규격화된 움직임에서 강세를 보이곤 했습니다.
일본의 첫 국제적 작품 와다나베 에미는 북미 스타일의 피겨에 가깝습니다.북미 지역에서 훈련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프래티애니 같은 우아함은 갖추지 못했고 포츠쉬 만큼의 스케일 큰 움직임이나 스피드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뭔가 조금씩 부족했습니다.
2. 이토 미도리 : 일본 피겨의 아이콘이자 한계
하지만 일본에서 이 와다나베 에미의 스타일이 주류가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은퇴 이후 4년간 2인자의 설움을 곱씹어 오던 고바야시 레이코가 챔프가 되며 월드에 출전하지만 17위, 그 이후 챔프들도 20위 근처로 존재를 제대로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의 원조 "신동" 신드롬 쓰나미 걸 이토 미도리가 1984년 부터 등장합니다.
이 시기, 그러니까 80년대 중반은 제가 기억하기로 일본의 산업 전반이 그간의 "모방과 복제에 의한 저가의 신제품"에 한계를 느껴 "우리만의 신기술"을 목놓아 부르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신기술 트리플 악셀로 무장한 미도리가 등장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트리플 악셀은 없었지만 여러 개의 트리플을 프로그램에 넣어도 점프의 높이와 탄력이 좋은 "일본제 점퍼"가 탄생한 것이죠. 외국 유학파도 아니고 순 일본제로....
위 영상이 바로 여성 최초로 국제 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선보인 이토 미도리의 1988 NHK 대회 프리 프로그램입니다. 기술점에서 하나의 6.0도 기록합니다. 그러나 잘 보시면 이 프로그램은 5개의 트리플을 포함하고 있는 그 당시로는 이미 최고 난도의 프로그램입니다. 즉, 트리플 악셀 하나 때문이 아니라 이토 미도리는 이 때 이미 최고 난도의 점퍼였습니다.
미도리 선수는 이후 월드 챔프, 올림픽 은메달 등 모든 지표에서 일본 최초를 기록합니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께 미셸 콴에 대해 무엇이 기억에 남느냐 질문하면 대체로 아랑훼즈, 세헤라자데 등의 작품을 꼽습니다. 대부분의 탑 스케이터에게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인상 깊은 한두 작품을 꼽게 되지요. 헌데 이토 미도리에게 무엇이 기억나느냐 하는 질문에는 아마 모두가 "점프, 점프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트리플 악셀이든 러츠든 말이죠....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이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세헤라자데(89/90), 영웅(90/91), 라흐마니노프(91/92) 등의 대중과 친숙한 음악을 썼는 데도 맗이지요.....
물론 이 이토 미도리 선수의 피겨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체형의 불리함도 이야기하고 외모의 불리함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선수 하나만이 아니라 그 뒤의 유카 사토, 수구리, 온다 요시에에 이르기까지 일본 피겨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점프"이지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역대 일본 챔피언 혹은 국제대회에서 족적이 있었던 선수들입니다.
아마도 그 추세에서 유일한 예외는 2004년의 시즈카 아라카와의 월드 프로그램일 것 같습니다

